길상사

지금은 2018년 구정 새벽1시 30분이다.
우리 시댁에서는 구정이나 추석에 집에서 차례를 지내지 않고 절에 가서 합동 차례를 지내고 예불을 하는것으로 보낸다.
시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제사를 절에 모시기 때문에 그 절로 차례를 가는것인데, 절이 나름대로 유명한 절이라 사람이 아주 많다. 우리가 차례를 지내기 위해 가는 절은 서울 성북동의 길상사다.

길상사의 열려있는 큰 문으로 들어가면 서울의 복잡함을 잠시 잊을수 있는 느낌이 든다. 명절이 아닌 평상시에는 서울이 아닌 어딘가 다른곳에 온것같은 조용함과 고즈넉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큰나무와 돌계단, 묵언 수행하는 스님들의 자그마한 방들, 손글씨 문패들, 그리고 운치있는 연못과 대웅전의 모습은 어딘가 단정한 느낌도 준다.

물론 명절에는 길상사도 많은 방문객과 관광객으로 복작거리고 들뜬 모습이다. 대웅전에서 예불하는 목탁소리와 염불소리가 스피커를 통해서 밖의 마당에서도 들린다. 가족 방문객을 위해 마당엔 전통놀이가 준비되어있고, 추운 날씨에 감사하게도 커피나 차를 준비해 주는 자원봉사자들도 있다. 역시 명절엔 이곳에서도 명절스러운 분위기가 자아내진다.

길상사는 서울 한복판에 있지만 산비탈의 주택가에 위치해 있어서 느낌이 색다르다. 산비탈이라지만 고급주택이 쭉 늘어선 곳이라 모두 콘크리트 포장된 길이다. 지하철역 한성대입구에서 내려서 마을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데, 구불구불한 길이라 승용차로는 평상시에도 올라가기 어렵지만 명절에 자가용을 가지고 길상사에 가는것은 아주 좋지 않은 선택이다. 안그래도 좁은 2차선 길 양 옆은 불법주정차한 차들로 꽉꽉 차있기 때문에 반대편 차선에서 오는 차를 마주치면 꼼짝없이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지게된다.

'무소유'라는 책으로 알려진 법정스님이 이 절을 시주받고 큰 어른으로 계시면서 절을 가꾸셨다. 많이 알려진 일화이지만, 이 절은 원래 고급요정이었다고 한다. 절의 부지를 시주한다는 것을 몇번이나 거절했지만 요정의 주인이 꼭 이절을 시주하겠다고 해서 할수 없이 받았다고 한다.
스님은 나중엔 절의 큰어른 자리를 벗어나 강원도의 오지로 들어가 자급자족하시면서 직접 무소유로 살아가셨다. 그리고 돌아가실때 집필한 모든 책을 절판해 달라고 하셨다. 그래서 스님의 책을 새 책으로는 지금 구할수가 없다. 후회나 걱정하지말고 현재를 살아가라는 스님의 말씀이 있었지만 책을 못구하는 점은 참 아쉽다. 법정스님은 절이 세속화되면서 부자절이 되는걸 경계하라고 하시면서, 가난하고 맑고 향기로운 도량이 되기를 사람들에게 당부하는 모습이 다른 책에서도 종종 언급된다. 이 길상사에서도 '맑고 향기롭게' 라는 글귀가 다양하게 씌여있다.

마음이 맑고 향기로워지고 싶을때 한번쯤은 방문해 보는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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